광주에서 시장을 걸을 때 마주하게 되는 세 가지 얼굴
광주라는 도시는 겉보기에 조용하고 정돈된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골목 안쪽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전히 활기를 잃지 않은 삶의 현장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전통시장입니다. 특히 양동시장, 대인시장, 송정역시장은 광주의 각기 다른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도매 유통의 중심이자 생활밀착형 장터인 양동시장, 청년 예술가들의 열기로 재탄생한 대인시장, 지역 특화 먹거리가 집약된 송정역시장은 서로 다른 특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광주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세 시장의 주요 특성과 현장 분위기, 방문 팁 등을 중심으로 광주의 전통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도매와 소매가 공존하는 광주의 중심 – 양동시장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위치한 양동시장은 1910년경 광주 다리 아래 백사장에서 열렸던 5일장으로 출발한 이후, 현재까지도 광주 지역에서 가장 큰 전통 시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약 1,000여 개의 입점 점포들이 밀집해 있으며, 청과물, 수산물, 육류, 의류, 생활잡화 등 없는 게 없을 만큼 종합적입니다.
무엇보다 양동시장은 1965~1970년경 농업협동조합 공판장이 들어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대규모 도매 유통 기능을 겸하고 있어 광주 외곽 중소상인들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가는 구조입니다(같은 이유로 후술할 대인시장은 청과물 도매 시장으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시장은 크게 6~7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각 구역 별로 주로 취급하는 품목이 어느 정도 나뉘어 특화되어 있습니다. 도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일상 소비처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시장 자체가 전반적으로 현대화 아케이드 구조로 되어 있어 비·눈 걱정 없이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시장에는 55년 이상 1970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오리탕 전문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식사한 국밥집 등 유서 깊고 탁월한 식당들이 다수 존재해 시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제공합니다. 특히 아침 7~8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인들의 모습은 양동시장이 여전히 ‘살아 있는 상권’이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 위치: 광주 서구 양동 5-101
- 운영: 월~토 운영, 일요일 일부 휴무
- 팁: 이른 오전에 방문하면 가장 신선한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 숨을 불어넣은 공간 – 대인시장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에 위치한 대인시장은 원래 지역 중심형 재래 시장이었으나, 2000년대 초반 대형마트와 온라인 소비 증가로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광주비엔날레 '복덕방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청년 예술가들이 빈 점포에 입주하며 시장을 ‘예술시장’으로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이른바 ‘예술 야시장’, 또는 ‘대인예술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시도는 이후 광주 문화관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예술 야시장’에서는 미술작품 전시, 소형 공연, 체험 부스, 수공예 판매 등 예술과 전통시장의 융합 콘텐츠가 펼쳐집니다. 실제로 대인예술시장에서는 드로잉 스튜디오, 독립 서점, 일러스트 소품점, 캘리그라피 체험장, 수묵화 체험장 등이 상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존해왔습니다.
또한 예술 프로그램 외에도 한식 주점, 떡볶이 가게, 수제 맥주집 등 젊은 감성의 식음료 공간도 들어서 있어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장소로 변모했습니다.
- 위치: 광주 동구 대인동 308-6
- 운영: 예술야시장 – 매주 토요일 저녁
- 팁: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등 광주광역시 주요 행사 일정을 미리 파악하여 대인예술시장과 함께 즐기면 더욱 좋습니다.
정겨운 먹거리의 집합소 – 송정역시장
광주 송정역 인근에 자리한 송정역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실속 있는 먹거리 시장으로 최근 여행자들 사이에 주목받고 있는 곳입니다. KTX 광주송정역과 바로 맞닿아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떡갈비 골목, 국밥 골목, 찹쌀도너츠 골목 등 특화된 먹거리 상권이 발달해 있습니다.
특히 '송정 떡갈비'는 광주 음식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으며, 이곳에서는 30년 이상 된 노포와 신생 매장이 함께 경쟁하고 있습니다. 석쇠 위에서 바로 구워주는 떡갈비, 진한 국물에 더하여 부드러운 고기와 피순대가 어우러진 국밥,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도너츠 등은 방문객에게 풍부한 맛과 만족감을 안겨 줍니다. 특히 2020년대 초부터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주말에는 대기 줄이 생기는 가게도 드물지 않습니다.
송정역시장은 상인회 주도로 맥주축제, 야시장 등도 개최하면서 지역사회 및 전국 단위 관광객들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한류 스타 아이돌이 '1913 송정역시장'에서 공연을 펼치는 등 이벤트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위치: 광주 광산구 송정동 990-18
- 팁: 아침보다는 점심 이후 시간대가 붐비며, SNS 인기매장은 대기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여전히 광주의 가장 깊은 일상이다
광주의 시장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 이상입니다. 양동시장에서는 전통적인 거래와 생필품의 유통이, 대인시장에서는 예술과 청년문화가, 송정역시장에서는 지역 정서와 먹거리가 한데 어우러집니다.
무엇보다 이 세 시장은 각기 다른 특색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소비의 장소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흐르는 장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주에 머무를 시간이 단 하루뿐이라면, 이 세 시장 중 하나는 반드시 일정에 넣어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광주의 맥박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