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심 속 시장이 보여주는 다층적 기능
서울 강북은 대형 유통망과 현대식 상업 공간이 집중된 지역이지만, 여전히 전통시장은 도심 생활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들 시장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의 소비와 문화, 관광과 생활을 동시에 지탱하는 복합 공간으로 작동합니다. 특히 중구와 종로 일대에 자리한 남대문시장, 통인시장, 신당시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울의 일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남대문시장은 국내외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 허브, 통인시장은 체험형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관광 자원, 신당시장은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먹거리 집적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장별로 특화된 역할은 전통시장이 여전히 현대 도시에서 실질적인 효용성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남대문시장: 국내 최대 전통시장이자 글로벌 유통 허브
서울역과 회현역 사이에 위치한 남대문시장은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국내 최대 전통시장으로, 약 1만 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서울관광재단, 2024). 규모 면에서도 단연 압도적일 뿐 아니라, 의류·잡화·식자재·전자제품·수입품 등 거의 모든 생활 품목을 구할 수 있어 ‘만물상’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닙니다. 도심 직장인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양한 고객층이 방문하고 있으며, 서울 도심의 핵심 유통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대문시장은 먹거리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칼국수 골목은 점심시간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고, ‘한순자 할머니 손칼국수’ 같은 노포는 50년 이상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갈치조림 골목의 ‘중앙갈치식당’은 손맛으로 오랜 세월 단골을 붙잡았고, 1932년 개업한 은호식당은 꼬리곰탕과 설렁탕으로 9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오며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VisitKorea, 2024).
남대문시장은 또한 국제적 소비 공간으로 발전했습니다. 상점마다 영어·일본어·중국어 안내판이 준비되어 있으며, 외국어 응대가 가능한 점포도 많습니다. 매년 개최되는 남대문시장 글로벌 페스티벌은 공연·체험·전시가 어우러진 행사로, 시장 자체를 관광 콘텐츠로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공급망과 관광 자원을 동시에 담당하는 남대문시장은 전통시장의 기능적 효용을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인시장: 엽전 도시락이 만든 체험형 관광 자원
종로구 통인동에 자리한 통인시장은 본래 지역 주민 중심의 소규모 생활형 시장이었으나, 2012년 시작된 엽전 도시락 카페 프로젝트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방문객은 엽전을 구입해 시장 내 점포에서 반찬과 음식을 선택해 도시락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체험형 콘텐츠가 전통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서울시 전통시장 육성사업 보고, 2023).
시장에서는 닭강정, 삼겹살말이꼬치, 떡갈비, 감자전 같은 메뉴가 인기를 끌며, 특히 기름떡볶이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SNS에 자주 올리는 메뉴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격은 4,000~8,000원대 수준으로 합리적이며, 젊은 세대의 ‘가성비’ 기준에도 부합합니다. 일부 메뉴는 편의점 간편식으로 확장되기도 하면서 시장 음식이 도시 브랜드로 재탄생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통인시장의 장점은 위치적 연계성입니다. 경복궁, 서촌 한옥마을, 청와대 사랑채와 가깝기 때문에 반나절 관광 코스로 쉽게 묶을 수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시장에서 도시락을 즐긴 뒤 인근 역사·문화 자원을 둘러보며 일정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청년 상인을 위한 팝업 부스, 예술가와 협업한 프로그램이 생겨 ‘전통시장+문화예술’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서울시 문화정책 자료, 2023). 통인시장은 체험과 관광, 문화가 결합한 전형적인 도시형 전통시장으로 평가됩니다.
신당시장: 즉석 떡볶이타운으로 자리 잡은 먹거리 집적지
중구 신당동에 형성된 신당시장은 1950년대 후반부터 상권이 자리 잡았으며, 현재는 신당 중앙시장과 신당동 떡볶이타운이 대표 구역을 형성합니다. 이곳은 즉석 떡볶이를 철판에 볶아 먹는 독특한 방식으로 유명하며, 떡볶이에 오징어·만두·라면사리·채소를 추가해 함께 끓이는 방식은 신당시장만의 독창적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대표 식당인 마복림할머니떡볶이는 ‘즉석 떡볶이 원조’로 불리며 수십 년간 명성을 이어왔습니다. 언론과 방송에서도 자주 다루어졌고, “서울에 오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꼽히고 있습니다(서울경제, 2023). 일부에서는 메뉴 구성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여전히 신당시장은 떡볶이의 명소로 자리매김하며 지역 경제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당 중앙시장 구역에서는 분식 외에도 순대국, 설렁탕, 생선구이 백반 등 든든한 식사를 제공하는 점포가 많아 직장인과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또한 채소, 건어물, 조미료 같은 식자재를 소량 단위로 구매할 수 있어 자취생과 1인 가구에게 실질적인 쇼핑처로 기능합니다. 이처럼 신당시장은 단순한 추억의 공간을 넘어, 지금도 서울 도심의 먹거리 집적지로서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이 보여주는 실질적 가치
남대문시장은 도심 유통의 허브, 통인시장은 체험형 관광 자원, 신당시장은 먹거리 집적지라는 기능을 수행하며, 서울 강북의 생활과 문화를 다층적으로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들 시장은 과거의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도시에서 여전히 필요하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시장 현대화, 디지털 전환, 관광 연계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상인회와 지역사회 역시 자율적 혁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서울 도심의 균형을 이루는 핵심 기반입니다. 남대문시장은 국내외를 연결하는 유통 축으로, 통인시장은 관광·문화와 결합한 체험 축으로, 신당시장은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먹거리 축으로 기능합니다. 전통시장이야말로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구성하는 생활 플랫폼이라는 점이 세 시장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