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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시장과 북한 장마당 비교 (구조, 운영, 사회 기능의 세 갈래)

by 시장 상인 다복 2025. 10. 16.

북한 장마당 관련 이미지

 

북한의 ‘장마당’은 생존의 터전으로, 대한민국의 전통시장은 생활문화의 중심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두 시장 모두 경제와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간이지만, 그 태생과 구조는 크게 다릅니다. 북한의 장마당은 비공식 경제의 산물로 탄생해 점차 제도권 일부로 흡수된 반면, 남한의 전통시장은 오랜 상업 유산과 제도적 보호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본 글은 북한의 장마당과 대한민국의 전통시장을 구조·운영·사회적 기능의 세 축으로 비교하여, 한반도 경제의 이중 구조가 지닌 함의를 살펴봅니다.

장마당의 탄생과 구조 — ‘비공식 경제’의 자생적 생존 시스템

  북한의 "장마당(場마당)"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국가 배급체계가 붕괴되면서 주민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생적 시장입니다. 초기에는 불법으로 간주돼 단속 대상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주민 의존도가 높아지자 당국은 일정 부분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통일연구원, 2023). 현재 북한 전역에는 약 440여 개의 장마당이 존재하며, 평양 통일거리시장, 청진 남문시장, 혜산시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장마당의 운영 구조는 가족 단위 또는 개인 중심의 상행위로 구성되며, 거래 수단으로는 북한 원화 외에도 중국 위안화, 물물교환이 공존합니다. 상품 구성은 국가 배급품과 개인 자가제작품, 중국산 공산품이 혼재되어 있고, 판매자들은 국가 기관에 사용료 또는 입점료를 납부하며 반공식적으로 영업합니다. 장마당은 단순한 물자 교환의 장을 넘어, 지역 정보의 교류와 비공식 경제활동의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공식 제도권 밖에서 운영되는 만큼 가격 변동성, 위조품 유통, 법적 보호 부재 등의 문제가 상존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약 70%가 장마당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여성과 중장년층이 주요 상인 계층을 이루고 있습니다(한국개발연구원, 2022). 즉, 장마당은 북한 경제의 ‘비공식 제2경제권’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시장 — 제도권 유통망 속의 공동체 경제

  대한민국의 전통시장은 조선 후기 오일장에서 출발해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제도권 유통망의 일부로 편입되었습니다. 현재 전국 약 1,400여 개 전통시장이 존재하며,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관리 아래 운영되고 있습니다(통계청, 2024). 남한의 시장은 법적·행정적 보호를 받으며, 상인회나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자율적 운영 구조를 갖춥니다. 디지털 전환 정책의 확산으로 POS 결제, 모바일 간편결제, 배달 서비스 등도 보편화되었습니다. 또한 전통시장은 지역 문화와 관광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 광장시장, 전주 남부시장, 통영 서호시장처럼 각 지역의 역사와 특산품을 콘텐츠화하여 ‘로컬 브랜딩’에 성공한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시장 현대화 사업을 통해 시설 개선, 온라인 판매 지원, 청년몰 조성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시장의 세대교체와 소비층 다변화를 이끄는 주요 요인입니다. 남한의 전통시장은 단순한 물품 거래를 넘어 공동체적 신뢰와 상생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문화형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구조적 차이 — 자생적 네트워크 vs 제도적 조직

  북한의 장마당과 남한의 전통시장은 모두 다수의 상인과 소비자가 교류하는 공간이지만, 운영 체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장마당은 상인 개개인의 생존을 위한 자율적 네트워크로, 상위 관리 기관은 존재하되 실질적 의사결정은 시장 내 개별 세력과 주민 간 합의로 이루어집니다. 반면 남한의 전통시장은 법적 허가와 행정 지원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상인회나 협동조합이 공식적인 관리 주체로 기능합니다. 또한 거래 방식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장마당에서는 현금과 외화, 물물교환이 혼용되며 비공식 환율 시장이 병존하지만, 남한 시장은 카드, 간편결제, 지역화폐 등 제도권 금융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품 면에서도 북한은 생필품과 농산물, 중국산 공산품이 주를 이루며, 남한은 식자재·로컬푸드·수공예품 등 문화 소비재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체제의 경제 구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장마당은 ‘아래로부터의 경제 자생력’, 전통시장은 ‘제도 속의 경제 자율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기능 — 생존의 장과 공동체의 장

  북한의 장마당은 단순한 경제활동의 장을 넘어 사회적 생존 인프라로 기능합니다. 배급제의 공백 속에서 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생필품을 확보하고, 지역 간 교류망을 형성하며, 정보 유통의 중심지로 활용합니다. 특히 장마당 여성상인(소위 ‘장사군인’)의 부상은 북한 사회 내 젠더 역할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KBS 통일포커스, 2023). 반면 남한의 전통시장은 공동체적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했습니다. 지역 주민의 만남의 장소이자 지역 축제의 무대로 기능하며, 전통 음식, 공예, 공연 등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시장은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고, 청년 창업과 고령 상인의 공존을 통해 지역 경제의 순환 구조를 만듭니다. 즉, 장마당이 개인의 생존경제를 지탱하는 공간이라면, 전통시장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문화경제를 만들어내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시장은 각각 다른 조건 속에서 ‘공존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남북 시장의 교차 가능성과 통합의 전망

  장마당과 전통시장은 모두 시대적 요구에 따라 ‘국가 경제 바깥의 유연한 영역’을 확장시켜 왔습니다. 장마당은 통제 속 자율의 공간으로, 전통시장은 제도 속 혁신의 공간으로 진화했습니다. 향후 남북 경제 협력이나 통일 이후 경제통합 과정에서 두 시장은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남한의 전통시장은 관리·유통·브랜딩 노하우를, 북한의 장마당은 현장형 소규모 상거래 네트워크를 제공함으로써, ‘현지 밀착형 지역경제 모델’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장마당이 보여준 비공식 경제의 생존력과 남한 시장의 제도화된 효율성이 결합된다면, 한반도의 지역상권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경제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시장의 상호 이해는 단순한 비교를 넘어, 남북 주민의 경제 인식과 생활문화의 접점을 찾는 일이며, 이는 통합 이후의 경제공동체를 준비하는 중요한 학습 과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