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은 이미 망원시장, 통인시장처럼 전국적 유명세를 얻은 전통시장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관광형 시장 외에도 지역민의 일상과 감성 여행자의 발길을 동시에 사로잡는 숨은 명소들이 있습니다. 이들 시장은 단순히 장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재생 사업과 로컬 브랜드, 오래된 노포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서울관광재단 자료에서도 전통시장이 체험형 콘텐츠와 결합해 관광 자원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서울관광재단, 2023). 이번 글에서는 신흥시장, 홍제·인왕시장, 경동시장, 우림·장미제일시장을 중심으로 ‘서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다섯 개의 전통시장을 살펴봅니다.
신흥시장: 해방촌 골목의 감각적 재생
용산 해방촌에 자리한 신흥시장은 1950년대 개설된 이후 한때 침체기를 겪었지만, 최근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젊은 감각의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ETFE 소재로 만든 반투명 아케이드 지붕이 설치되어 낮에는 햇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을 비추며 시장 특유의 분위기를 한층 세련되게 합니다. 시장 골목에는 브런치 카페, 디저트 숍, 공방 등이 들어서 있어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젊은 층에게도 친근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브런치 카페 ‘네이버즈’는 남산 타워 뷰를 감상하며 식사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소개되었으며, 디저트 전문점과 소규모 갤러리, 로컬 공방들이 함께 어우러져 ‘해방촌 감성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한국일보, 2022). 신흥시장은 전통시장이 과거의 흔적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문화와 창의성을 품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제·인왕시장: 아날로그 정취와 생활의 기억
서대문구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홍제시장과 인왕시장은 서울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생활형 전통시장입니다. 오래된 간판, 수선집, 한복점, 문방구가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골목마다 낡은 풍경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대표적으로 홍제동의 수제 만두 전문점 ‘이계절손만두’는 국내산 재료를 사용해 매일 직접 빚는 만두로 지역 주민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인왕시장 인근의 닭볶음탕 전문점 ‘산내들(삼순네)’은 묵은지 닭볶음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서울경제, 2023). 이처럼 특정 메뉴를 중심으로 골목의 맛집이 형성되며 시장 일대의 활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대규모 관광객 유입보다는 단골 중심의 정서가 살아 있어, 방문객에게는 ‘서울 속의 작은 시간여행’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경동시장: 한약재와 레트로 감각의 공존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경동시장은 1960년대 개설된 국내 최대 한약재 시장으로, 건강과 전통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인삼협동조합 매장에서는 국내산 인삼과 한방차를 시음할 수 있으며, 다양한 한약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거 극장을 개조해 문을 연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복고풍 인테리어로 큰 주목을 받으며, 전통시장과 현대적 소비 문화가 결합된 상징적 장소로 소개되고 있습니다(매일경제, 2021). 또한 인근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에서는 옛 전자제품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어 세대 간 추억을 공유하는 장으로 활용됩니다. 서울관광재단은 경동시장을 건강과 레트로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으며, 이는 전통시장이 기능적 역할을 넘어 체험형 공간으로 확장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림시장과 장미제일시장: 주민의 일상과 골목의 생명력
중랑구에 위치한 우림시장과 장미제일시장은 관광객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서울 주민의 생활 속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이용되는 생활형 전통시장입니다. 우림시장에서는 ‘베이커리 망우’가 지역 명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경제과학교 출신 제빵사가 운영하는 이 빵집은 정직한 재료와 독창적 메뉴로 인근 주민은 물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습니다(서울신문, 2023). 또한 노포 순대국집이나 갈비 전문점, 곱창집이 시장의 뿌리를 지키며 세대 간 교류의 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장미제일시장에는 30년 넘게 이어진 ‘만나분식’이 자리해 손칼국수와 김밥, 비빔밥을 판매하며 단골손님들의 발길을 이어갑니다. 이처럼 중랑구의 전통시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지역민의 일상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생활 밀착형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로컬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서울
서울의 숨은 전통시장은 단순히 장보기 공간을 넘어, 지역의 정체성과 현대적 감각이 만나는 장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신흥시장은 도시재생을 통한 젊은 감각의 시장, 홍제·인왕시장은 아날로그적 정취의 공간, 경동시장은 건강과 레트로 감성이 어우러진 체험형 시장, 우림·장미제일시장은 주민 중심의 일상적 시장으로 각각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시장은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공통적으로 ‘서울 로컬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방문객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앞으로 전통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분명합니다. 지역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소비 문화와 결합해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서울의 숨은 전통시장들은 이미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으며, 이는 도시 관광과 지역 공동체 모두에게 긍정적인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로컬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서울’은 결국 이 시장들을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