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시장은 여전히 가족 단위 소상공인의 경제적 현장입니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가 함께 상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곳은, 세대가 공존하는 사회적 단위이자 생활경제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 속 가족 점포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노동의 흐름, 세대 간 협업, 소비 변화에 맞서 버티는 경영의 현실이 공존합니다. 본 글은 이들의 일과 구조, 협력 방식,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살펴봅니다.
새벽에서 밤까지 이어지는 생업의 리듬
가족이 운영하는 점포의 하루는 새벽 도매시장 방문으로 시작됩니다. 식자재나 수산물을 취급하는 상점은 오전 4시 무렵부터 물품을 확보하고, 분류와 진열을 직접 수행합니다. 부부나 형제가 협력해 상하차, 계산, 청소, 포장 등 업무를 나누며 하루를 준비합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23 전통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 점포의 평균 영업시간은 하루 12시간을 넘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체력노동에 해당합니다. 최근에는 카드결제기, 제로페이, 배달앱 주문 관리 등 디지털 기기가 일상 업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점심 이후에는 손님 응대, 주문 처리, 재고 정리 등으로 긴장이 지속되고, 폐점 후에는 매출 확인과 다음날 상품 준비가 이어집니다. 긴 시간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도 가족은 명확한 분업과 협력을 통해 매장을 운영합니다.
세대 간 협력과 역할의 조정
가족 경영의 강점은 세대 간 분업 구조입니다. 부모 세대는 고객 응대와 거래 감각, 오랜 신뢰 관계를 담당하고, 자녀 세대는 온라인 마케팅, SNS 홍보, 데이터 관리 등 새로운 역할을 맡습니다. 예컨대 전주 남부시장과 부산 부전시장에서는 자녀 세대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신상품과 행사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며, 방문 고객층을 20~30대로 확장한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중소벤처기업부, 2024). 그러나 세대 간 관점 차이로 인한 마찰도 존재합니다. 부모 세대는 경험 중심의 운영을 중시하고, 자녀 세대는 효율과 분석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일부 시장 상인회에서는 ‘가족 점포 세대전환 워크숍’이나 ‘소통형 경영 교육’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가족 단위 상점은 구성원의 신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며, 이는 시장 내 경영 안정성과 직결됩니다.
변화하는 소비와 기술, 그리고 적응의 방향
최근 가족 점포의 환경은 급격히 바뀌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단골 중심의 구조에서 MZ세대, 1인 가구, 관광객 중심의 소비로 이동하면서, 고객 요구가 ‘제품’보다 ‘운영 방식’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통계청(2023)에 따르면, 전통시장 내 온라인 주문·비대면 거래 경험률은 최근 3년간 4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자녀 세대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습니다. 가족 단위 점포가 SNS 홍보, 배달앱 연동, 실시간 재고 관리 기능을 도입하면 매출 상승률이 평균 18% 높게 나타났다는 조사도 있습니다(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2023). 시장의 변화는 기술 수용 능력뿐 아니라 가족 간 의사결정의 속도와 조율 능력에 의해 좌우됩니다. 즉,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가족’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합니다.
가족 경영이 직면한 현실적 과제
전통시장 가족 점포가 당면한 주요 문제는 노동시간 과중과 후계자 부족입니다. 가족 단위로 운영하더라도 휴식 보장이 어렵고, 주말 영업이 기본이어서 가족의 개인 생활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2023)에 따르면, 가족 경영 소상공인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에 달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무급노동으로 집계됩니다. 또한 자녀 세대의 가업 승계율은 30% 미만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가업승계 지원금’, ‘공동휴무제 시범사업’, ‘가족형 리모델링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행정적 지원과 현실 간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가족 점포는 협업과 신뢰를 기반으로 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며, 외부 인력보다 높은 재고 회전율과 거래 지속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상의 지속, 시장의 생명력
가족 단위 소상공인은 시장의 구조적 기반을 이루는 실질적인 경제 주체입니다. 이들의 하루는 반복되는 노동이지만, 동시에 지역 상권을 유지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시장의 지속 가능성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의 지속성에 달려 있으며, 가족 점포는 그 중심에서 기능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그들은 효율과 유연함, 그리고 상호 신뢰를 경영의 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전통시장 가족 점포의 일상은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오늘의 도시와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구체적인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