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전통시장의 새로운 관점
한국의 전통시장은 단순한 장터를 넘어, 한 지역의 생활문화와 역사적 맥락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오랜 세월 자리해 온 점포들, 노포의 음식 냄새, 상인들의 활발한 목소리는 대형 쇼핑몰이나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현장성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채식주의자나 할랄(Halal) 식단을 지켜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전통시장은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이기도 하지만, 실제 식사를 해결하기에는 다소 도전적인 환경일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일부 전통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이런 요구를 반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의 망원시장과 이태원시장은 채식과 할랄이라는 특별한 식문화를 중심으로, 전통시장이 어떻게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망원시장, 채식주의자를 위한 새로운 실험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은 MZ세대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동시에 인기를 얻고 있는 전통시장입니다. 최근 몇 년간 SNS와 언론 기사에서 자주 소개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비건(채식) 메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점들의 등장입니다. 예를 들어, ‘두두리두팡’은 비건·넛프리·글루텐프리 디저트를 판매하는 소규모 베이커리로, 사탕수수설탕조차 쓰지 않는 원칙을 지키며 수익금 일부를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실제 리뷰에서는 “알레르기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반응이 다수 확인됩니다(올리브 매거진, 2022). 또 다른 가게 ‘어라운드그린’은 두부 데리야끼 현미밥 정식, 버섯 깐풍 현미밥 정식처럼 한식을 비건 레시피로 재해석해 외국인 채식 여행자들에게 친숙한 맛을 제공합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알려진 비건 샌드위치 카페 ‘언덕’도 인기 있는데, 채소·버섯·두부·견과류만으로도 풍부한 맛을 구현해 SNS상에서 주목받았습니다(Allure Korea, 2022). 이처럼 망원시장은 ‘비건+로컬’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전통시장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태원시장, 할랄 문화를 품은 다문화 상권
채식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따르는 것이 할랄 식단입니다. 이슬람 신자들에게는 단순히 음식 선택이 아니라 종교적 실천이기에, 한국을 찾는 무슬림 관광객에게 전통시장에서의 식사는 더 큰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는 예외적 공간으로, 다양한 할랄 음식점과 식료품점이 모여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할랄가이즈’는 뉴욕에서 시작된 글로벌 브랜드로, 서울 이태원점은 공식 할랄 인증을 받은 재료를 사용해 치킨 플래터 같은 메뉴를 제공합니다. 무슬림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할랄 음식점”으로 자주 언급됩니다(에스콰이어 코리아, 2023). 또한 ‘이스탄불 딜라이트’는 터키 전통 디저트 전문점으로, 모든 식재료가 할랄 인증을 받았다고 안내되고 있습니다. 이태원시장 일대의 소규모 전통시장은 파키스탄·인도·인도네시아·터키 식료품이 거래되는 독특한 장터로, 외국인 유학생과 관광객 모두가 즐겨 찾습니다. 이는 한국 전통시장이 다문화 소비자층을 포용하는 상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시장의 변화를 이끄는 글로벌 수요
망원시장과 이태원시장의 사례는 전통시장이 더 이상 ‘지역 주민만의 공간’이 아님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글로벌 소비자의 요구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일수록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습니다. 망원시장의 비건 전문점들은 외국어 메뉴판, SNS 홍보, 모바일 간편 결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이태원시장은 할랄 인증 마크와 다국어 안내, 카드 결제를 기본 서비스로 정착시켰습니다(비즈 뉴욕, 2016). 이는 단순히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넘어, 시장 자체가 국제적 취향을 존중하는 열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전통시장은 이제 단순히 장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현장이 되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 여행자는 망원시장에서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비건 음식을 통해 한국적인 맛을 경험하고, 무슬림 관광객은 이태원시장에서 자신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할랄 음식을 즐깁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한국 사회가 가진 다양성과 포용성을 몸소 느끼게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전통시장이 글로벌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한다면, 전통시장은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현재와 만나 세계와 호흡하는 방식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