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들·골목이 만나는 충청남도 전통 시장 기행
충청남도는 느림의 미학과 정겨운 인심이 살아 있는 지역입니다. 그 중심에는 전통 시장이 여전히 지역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닷가부터 들판, 그리고 도시 골목까지 다양한 풍경을 품고 있는 충청남도 서천군, 청양군, 논산시의 장터는 단순한 상거래 공간을 넘어 삶의 이야기와 지역 정서가 오롯이 담긴 장소입니다. 이 글에서는 각각의 시장이 지닌 개성과 그 속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충청도 장날의 진짜 풍경을 소개합니다.
서천 특화시장: 바다와 장터의 만남
충청남도 서천군의 서천 특화시장은 대표적인 해산물 중심의 전통 시장으로, 지역 어민들의 삶과 충청도 바닷가 마을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입니다. 장날을 정하는 정기 시장 형태보다는 상설 시장 형태지만, 주말이면 전통 시장 특유의 활기로 가득 찹니다.
이곳의 핵심은 서해안에서 바로 잡은 신선한 해산물입니다. 키조개, 주꾸미, 갑오징어, 실치, 대하 등 계절별 수산물이 다양하게 진열되며, 직접 조업한 어민들이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은 합리적이고 품질은 우수합니다. 시장 내부에는 손질한 해산물을 그 자리에서 조리해주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으며, 즉석 회센터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습니다. 회, 멍게비빔밥, 해물파전 등 충청도 해안가의 향토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 한산모시떡, 천일염, 조개젓 같은 지역 가공 식품들도 잘 알려져 있으며, 봄철 서천 동백꽃 주꾸미축제 시즌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시장을 찾습니다.전통 시장과 축제의 결합을 통해, 시장은 단순한 상거래 공간을 넘어 지역 문화 체험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청양 5일장: 농민과 농산물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곳
충청남도 청양군의 청양 5일장은 매월 4일, 9일에 열리며, 청양읍 거리 전체가 장터로 변하는 시골 오일장입니다. 이곳은 ‘청양고추’로 유명한 지역답게, 다양한 종류의 고추 관련 제품들과 계절 채소가 시장을 가득 채웁니다. 청양장은 대부분의 판매자가 직접 농사 지은 작물을 가지고 나오는 농민 중심 시장입니다.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채소에는 흙이 묻어 있고 모양은 들쭉날쭉하지만, 신선도와 가격 경쟁력은 뛰어납니다.
시장 골목 곳곳에서는 막걸리를 나누는 주민들, 장에서 산 나물로 점심을 준비하는 어르신들, 쪄온 찰옥수수나 누룽지를 나누는 풍경 등에서 진짜 지역 특색이 묻어나는 향토적인 생활이 느껴집니다.
최근 청양군은 장터에 청년 창업 부스, 무대 공연 공간을 마련해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자 노력 중입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밭에서 바로 나온 농산물과 정직한 농민의 손길이 있습니다.
논산 화지시장: 골목이 곧 삶
충청남도 논산시의 화지시장은 도시화 속에서도 전통의 원형을 지켜온 골목형 시장입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안에 오래된 한복집, 국밥집, 수제화점, 두부공장 등이 밀집해 수십 년 된 상점들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플리마켓과 특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리며,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장터 감성이 함께 어우러져 도심 속 ‘사람 냄새 나는 시장’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논산의 딸기, 토마토, 고구마, 밤 등 지역 농산물은 물론, 수육국밥, 수제 어묵, 감자떡, 인절미, 참기름 등 전통 간식과 가공품들도 인기가 많습니다. 이곳에는 여전히 “많이 담아줄게”, “한 번 더 맛보고 가”라는 전통 시장 특유의 인심이 살아 있습니다.
또한 논산시는 화지시장을 중심으로 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작은 전시관, 향토문화관,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 장터’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의 흔적이 담긴 가게들, 웃음소리, 손짓, 느릿한 걸음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화지시장은 단지 시장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공인 공간’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도시를 벗어나 장터에서 마주한 여유
충청도의 장터는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소란스럽진 않지만 깊이 있는 공간입니다. 서천의 바다 냄새, 청양의 흙내음, 논산의 골목 풍경은 각각의 방식으로 지역의 삶과 정서를 담아냅니다. 이 시장들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과 계절의 흐름을 전달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번 주말, 잠시 도시를 벗어나 충청도의 장날을 찾는다면, 한 그릇의 음식, 한 마디의 인사, 한 장의 풍경 속에서 잊지 못할 여유와 따뜻함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